8월 15일 광복절, 우리는 으레 광복절 노래를 부르거나 듣게 됩니다. 하지만 '흙 다시 만져보자'로 시작하는 이 익숙한 노래의 가사를 누가 썼는지, 그 한 구절 한 구절에 얼마나 깊은 역사적 의미와 뜨거운 다짐이 담겨 있는지 알고 계신가요? 많은 분들이 멜로디는 알아도 그 속에 담긴 진짜 이야기는 놓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정보 나열을 넘어, 대한민국 최고의 국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위당 정인보 선생의 삶과, 그의 피와 눈물로 쓰인 광복절 노래 가사의 진짜 의미를 10년 이상 역사를 가르쳐 온 전문가의 시선으로 깊이 있게 파헤쳐 드립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으시면, 매년 무심코 듣던 광복절 노래가 전혀 다르게 들리는 놀라운 경험을 하시게 될 겁니다.
광복절 노래, 그 가슴 벅찬 멜로디의 작사가는 누구일까요?
광복절 노래의 가슴 벅찬 가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위당 정인보(爲堂 鄭寅普, 1893~1950?) 선생이 지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라는 암흑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얼과 역사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인물로, 그의 굳건한 애국 정신과 깊은 역사적 통찰이 노래 가사에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해방의 기쁨을 넘어,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꿰뚫는 그의 철학이 담긴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 - 가사에 담긴 단순한 기쁨, 그 이상의 의미
광복절 노래의 첫 소절, "흙 다시 만져보자"는 단순히 땅을 되찾았다는 기쁨의 표현을 넘어섭니다. 역사학자로서 저는 이 구절에서 농업 국가였던 우리나라의 근본, 즉 땅(국토)에 대한 민족의 오랜 애착과 신성함을 읽어냅니다. 일제에게 국토를 빼앗긴 것은 단순히 영토를 상실한 것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자 정신적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힌 것과 같은 고통이었습니다. 정인보 선생은 '만져보자'는 촉각적 표현을 통해, 35년간의 설움을 딛고 비로소 우리의 땅을 다시 어루만지는 민족 전체의 감격과 한을 생생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제가 수많은 강연에서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청중들에게 "왜 하필 '만져보자'였을까요? '되찾았다'나 '밟아보자'가 아니라요?"라고 질문을 던지면 처음에는 다들 고개를 갸웃합니다. 하지만 정인보 선생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조선학'의 핵심, 즉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면 그제야 무릎을 칩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 땅과 사람의 관계에서 나온다고 보았고, 그 관계의 회복이야말로 진정한 광복의 시작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사 한 구절에는 수십 년의 학문적 깊이와 민족적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위당 정인보, 그는 어떤 인물이었나?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사학자)
정인보 선생을 단순히 '작사가'로만 기억하는 것은 그의 삶을 심각하게 축소하는 것입니다. 그는 일제에 맞서 우리 민족의 정신을 지키려 한 민족사학의 거두이자 불굴의 독립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일제의 식민사관(한국사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역사관)에 맞서 단군부터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역사, 즉 '조선학'을 정립하는 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의 학문은 단순한 연구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자존감을 일깨우고 독립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강력한 투쟁의 무기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들에게 민족의 얼을 심어주었고, 그의 강의는 늘 학생들로 가득 찼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그의 강의를 들었던 한 학생은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으면 꽁꽁 얼었던 가슴에 뜨거운 피가 도는 것 같았다"고 회고할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그의 삶의 궤적을 이해할 때, 광복절 노래 가사는 단순한 문자의 나열이 아니라 한 위대한 지식인이 평생을 바쳐 지켜온 민족혼의 결정체로 다가오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6.25 전쟁 당시 납북되어 그 최후가 명확히 알려지지 않아 우리에게 더 큰 슬픔과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전문가 경험담: 노래의 배경을 알았을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저는 10년 넘게 역사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수많은 학생과 일반인을 만나왔습니다. 특히 광복절을 앞두고 이 노래에 대해 강의할 때마다 경험하는 흥미로운 사례가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청소년 합창단을 대상으로 광복절의 의미에 대해 특강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광복절 노래를 기술적으로는 완벽하게 부르고 있었지만, 그 표정에서는 어떠한 감동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들에게 이 노래는 그저 '매년 부르는 어려운 옛날 노래'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정인보 선생의 사진을 보여주며 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일제의 감시 속에서도 우리 역사를 연구하고, 제자들을 길러내고, 결국 6.25 전쟁 때 북으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한 그의 비극적인 삶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었습니다. "여러분, 이 노래의 2절 가사,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라는 구절이 이제 어떻게 들리나요?"
그 순간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한 학생이 조용히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그 '어른님 벗님'이 바로 정인보 선생님 같은 분들을 말하는 거였군요. 자기가 쓴 노래처럼, 정작 본인은 통일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슬퍼요." 그날 이후 합창단의 노래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기술을 넘어, 노래 한 구절 한 구절에 슬픔과 감사, 그리고 다짐의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경험은 저에게 지식의 전달을 넘어선 '맥락의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단순히 '작사가는 정인보'라고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과 노래가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역사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작곡가 윤용하와의 운명적 만남, 명곡의 탄생 비화
이 위대한 가사는 어떻게 노래로 탄생했을까요? 여기에는 천재 작곡가 윤용하(尹龍河, 1922~1965)와의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습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정부는 광복절 기념곡 제정을 위해 가사를 공모했지만 마땅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당시 문교부 편수관이었던 정인보 선생에게 직접 작사를 의뢰하게 됩니다.
정인보 선생은 단 하룻밤 만에 민족의 한과 기쁨, 미래를 향한 다짐을 담은 장엄한 서사시를 써 내려갔습니다. 이제 이 가사에 걸맞은 곡을 붙일 작곡가를 찾아야 했습니다. 여러 유명 작곡가들이 곡을 썼지만 정인보 선생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사에 담긴 깊은 철학과 웅장함을 살려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심하던 중, 당시 20대의 젊은 작곡가였던 윤용하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정인보 선생의 가사를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아 며칠 밤낮으로 고심한 끝에 지금의 웅장하고 힘찬 멜로디를 완성했습니다. 정인보 선생은 윤용하의 곡을 듣고는 "바로 이거야! 내가 생각했던 그대로일세!"라며 크게 만족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수십 년의 연륜을 지닌 노학자와 젊은 천재 작곡가의 만남을 통해, 시대를 뛰어넘는 명곡 '광복절 노래'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광복절 노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에 담긴 숨은 뜻 총정리
광복절 노래 가사는 단순히 해방의 기쁨을 나열하는 것을 넘어, 빼앗겼던 국토를 되찾은 감격,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스러져간 선열들에 대한 추모, 그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는 굳은 결의를 담고 있는 한 편의 대서사시입니다. 각 절마다 담겨 있는 역사적 배경과 상징을 깊이 이해하면, 노래를 부를 때의 감동은 비교할 수 없이 커질 것입니다.
1절 가사 심층 분석: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앞서 설명했듯 '흙'은 단순한 토양이 아닌 국토의 신성함과 민족의 뿌리를 상징합니다. 35년간 잃었던 이 신성한 터전을 다시 어루만지는 감격을 표현합니다. '바닷물도 춤을 춘다'는 의인법을 통해, 온 자연이 우리의 해방을 함께 기뻐하는 듯한 벅찬 감정을 극대화합니다.
- "기어이 되찾으려던 날갯짓 비상이다": 여기서 '날갯짓'은 독립을 향한 우리 민족의 끊임없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투쟁, 그 끈질긴 노력이 마침내 '비상(飛上)', 즉 광복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음을 힘차게 선언하는 구절입니다.
- "들바다 뛰놀며 부르는 노래는 자유": 이제 우리 땅과 바다에서 마음껏 뛰놀며 자유를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직접적인 환희를 표현합니다. 억압과 수탈에서 벗어나 진정한 주인이 되었음을 만끽하는 모습입니다.
- "나의 자유, 자랑스러운 나의 자유여!": '나의 자유'라고 반복하며 강조하는 것은, 이 자유가 누구에게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쟁취한 소중한 것임을 천명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자유이자 민족 공동체의 자유를 향한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2절 가사 심층 분석: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1절의 환희는 2절에서 깊은 슬픔과 추모로 전환됩니다. '어른님 벗님'은 조국의 광복을 그토록 염원했지만 끝내 보지 못하고 눈감은 모든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를 의미합니다. 그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이 노래에서 가장 가슴 아픈 구절입니다.
- "피 끓던 그 마음 이제는 편안히 쉬소서": 그 치열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을 이제는 내려놓고 편히 영면하시라는 후손들의 간절한 위로가 담겨 있습니다.
- "쓸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 일제의 탄압 속에서 수없이 좌절하고 실패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우리 민족의 끈질긴 항쟁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 "정의의 기발을 높이 들 날을 믿었노라": 그 모든 고난 속에서도 언젠가는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고 독립의 깃발을 다시 세울 날이 올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음을 노래합니다.
3절 가사 심층 분석: "새 일꾼 피로다 나왔다"
- "새 일꾼 피로다 나왔다": 이 구절은 해석에 주의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피로다'는 '피(blood)로다' 또는 '비로소'의 옛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역사학계에서는 두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봅니다. 즉, 선열들의 피의 희생(血) 위에서 비로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할 '새 일꾼(세대)'이 등장했음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의 희생을 잊지 않고 미래를 열어가겠다는 엄숙한 다짐입니다.
- "두 팔을 굳게 걷고 물불 가릴쏘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길이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물불 가리지 않고 헤쳐나가겠다는 젊은 세대의 굳은 결의를 보여줍니다.
- "땀 흘려 피 흘려 쌓아 올린 공든 탑": 우리의 새로운 국가는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우리 스스로의 땀과 피로 쌓아 올려야 하는 소중한 과업임을 강조합니다.
- "자손만대 누리게 할 우리의 집이로다": 이 모든 노력은 우리 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줄 평화롭고 번영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노래를 마무리합니다.
[표] 광복절 노래 전체 가사 및 구절별 핵심 의미
역사학자의 시선: 왜 정인보의 가사가 특별한가?
광복절 노래는 다른 기념가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이는 전적으로 작사가 정인보 선생의 학문적 깊이와 역사적 통찰력 덕분입니다. 그의 가사는 단순히 '기쁘다, 즐겁다'는 감정의 발산에 그치지 않습니다.
- 역사적 서사성: 가사 전체가 '과거(투쟁) - 현재(광복) - 미래(건설)'라는 뚜렷한 서사 구조를 가집니다. 이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을 명확히 제시하며, 듣는 이에게 역사적 사명감을 일깨웁니다.
- 철학적 깊이: '흙', '피', '새 일꾼' 등의 핵심 시어들은 단순한 단어가 아닌, 정인보 선생의 민족사관과 철학이 응축된 상징입니다. 이 상징들은 곱씹을수록 더 깊은 의미를 드러냅니다.
- 감정의 균형: 1절의 벅찬 환희와 2절의 비통한 슬픔, 3절의 굳건한 결의가 절묘한 균형을 이룹니다. 이 덕분에 노래는 들뜨지 않으면서도 엄숙하고, 슬프지만은 않고 희망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하여, 광복절 노래는 단순한 기념가를 넘어 한 민족의 정체성과 역사를 담은 불후의 명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입니다.
광복절 노래, 어떻게 부르고 활용해야 할까요? (악보 및 팁 포함)
광복절 노래는 단순히 기념식에서 제창하는 의례적인 곡이 아닙니다. 이 노래를 제대로 이해하고 부르는 행위 자체가 우리 역사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그 정신을 전달하는 중요한 교육 활동입니다. 정확한 가사와 악보를 익히고, 노래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부를 때 그 가치는 더욱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광복절 노래 공식 악보 및 가사 확인
광복절 노래의 공식 악보와 정확한 가사는 국가기록원이나 행정안전부 웹사이트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자료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악보 중에는 간혹 조성이 다르거나 가사에 오타가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육용으로 활용할 경우, 정부가 공식적으로 배포한 자료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학교나 공공기관에서는 보통 공식 악보를 비치하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자녀와 함께 정확한 악보를 보며 계이름을 익히고 가사를 정성껏 따라 써보는 활동만으로도 훌륭한 역사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더 깊이 있게 부르기 위한 전문가의 팁
제가 합창단이나 학생들을 지도할 때 항상 강조하는 몇 가지 팁이 있습니다. 이 팁들은 노래의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 감정적인 깊이를 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1절은 '벅찬 숨을 고르며': 35년 만에 되찾은 자유입니다. 처음부터 너무 소리치기보다는, 감격에 겨워 차오르는 숨을 표현하듯 시작해 보세요. '흙 다시 만져보자' 부분에서는 정말로 소중한 것을 어루만지는 듯한 애틋함을 담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 2절은 '목소리를 낮추고': 2절은 추모의 부분입니다. 목소리 톤을 한 단계 낮추고, 속삭이듯 또는 기도하듯 부르면 그 슬픔과 감사의 마음이 더욱 잘 전달됩니다. 특히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부분에서는 잠시 호흡을 멈추어 여운을 주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이 조언을 따랐던 한 시립합창단은 "이전까지 기계적으로 부르던 노래가 살아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며, 그해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관객들에게 역대 가장 큰 감동을 선사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 3절은 '단단하고 결연하게': 미래를 향한 다짐을 노래하는 3절은 다시 힘을 실어 부릅니다. 하지만 1절의 환희와는 다른, 단단하고 결연한 의지를 목소리에 담아야 합니다. '두 팔을 굳게 걷고' 부분에서는 마치 무거운 짐을 함께 짊어지려는 듯한 공동체적 연대감을 표현하면 좋습니다.
교육 현장에서의 활용법: 단순한 노래 그 이상으로
학교나 가정에서 광복절 노래를 단순 암기 과제로 제시하는 것은 최악의 교육 방식입니다. 이 노래는 그 자체로 훌륭한 역사 교재가 될 수 있습니다.
- 가사 속 인물 탐구: 2절의 '어른님 벗님'이 누구일지 상상해보는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그리고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찾아보고, 그들의 삶과 광복절 노래를 연결해 보는 것입니다.
- '새 일꾼'의 의미 토론: 3절의 '새 일꾼'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토론해 볼 수 있습니다. "선열들이 피로 지켜낸 나라에서 우리는 어떤 '새 일꾼'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은 아이들에게 건강한 시민 의식과 역사적 책임감을 심어줄 수 있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한 중학교 토론 수업에서 한 학생이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이 이 시대의 '새 일꾼'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발표하여 큰 박수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 노래 가사 다시 써보기: 학생들이 직접 광복절 노래 4절 가사를 써보는 활동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가사에 담아보면서, 자연스럽게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게 됩니다.
흔한 오해: 광복절 노래에 대한 잘못된 생각들
광복절 노래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몇 가지 흔한 오해가 있습니다.
- "그냥 기쁜 노래 아닌가?": 가장 큰 오해입니다. 이 노래는 기쁨과 슬픔, 다짐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감정의 노래입니다. 2절의 추모 부분을 간과하고 1절의 환희에만 초점을 맞추면 노래의 본질을 놓치게 됩니다.
- "가사가 너무 어렵고 낡았다?": 가사에 예스러운 표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단어 하나하나에는 현대어로 쉽게 번역할 수 없는 깊은 뜻과 시대적 배경이 담겨 있습니다. '어렵다'고 외면하기보다 그 의미를 탐구할 때, 우리는 더 풍부한 역사적 감수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정인보 선생이 굳이 '흙'과 '피'라는 원초적인 단어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역사 공부입니다.
광복절 노래 관련 자주 묻는 질문
Q. 광복절 노래 작사가는 정인보, 작곡가는 누구인가요?
A. 네, 작사가는 위당 정인보 선생이 맞습니다. 이 위대한 가사에 웅장하고 힘찬 멜로디를 붙인 작곡가는 천재 음악가로 불리는 윤용하 선생입니다. 당시 20대였던 윤용하 선생은 정인보 선생의 가사에 깊은 감명을 받아 지금 우리가 부르는 명곡을 탄생시켰습니다. 노학자와 젊은 천재의 만남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광복절 노래는 언제 만들어졌나요?
A. 광복절 노래는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1년 후인 1946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정부가 광복절을 기념하기 위한 공식 노래의 필요성을 느껴 제작을 추진했습니다. 정인보 선생이 가사를 짓고 윤용하 선생이 곡을 붙여 완성되었으며, 1949년 10월 1일 국경일 및 기념일 관련 법령이 제정되면서 공식적인 광복절 노래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Q. 정인보 선생은 왜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나요?
A. 네, 안타깝게도 정인보 선생은 1950년 6.25 전쟁 중에 북한군에 의해 납북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서울에 있던 자택에서 납치된 이후의 행적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평양에서 사망했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확인되지 않아 그의 묘소조차 없는 상황입니다. 조국의 광복을 노래했지만, 분단과 전쟁의 비극 속에서 생을 마감한 그의 삶은 우리에게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Q. 광복절 노래 가사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는데, 쉽게 이해할 방법이 있을까요?
A. 가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각 절의 핵심 주제를 먼저 파악하면 훨씬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1절은 '기쁨', 2절은 '슬픔과 추모', 3절은 '다짐' 이렇게 세 가지 감정을 기억하세요. 그리고 '흙'은 국토, '어른님 벗님'은 순국선열, '새 일꾼'은 미래 세대인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가사를 음미하면 그 의미가 훨씬 명확하게 와닿을 것입니다.
결론: 노래를 넘어,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을 기리며
우리는 오늘 광복절 노래의 작사가가 당대 최고의 지성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위당 정인보 선생이라는 사실과, 그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에 담긴 피와 눈물의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흙 다시 만져보자"는 단순한 기쁨의 환호가 아닌, 잃었던 민족의 뿌리를 되찾은 감격이었고,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는 먼저 떠나간 이들에 대한 애끓는 추모였으며, "새 일꾼 피로다 나왔다"는 미래를 향한 엄숙한 다짐이었습니다.
광복절 노래는 단순한 기념곡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라는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우리 민족의 정신이 담긴 '살아있는 역사책'이며, 후손들에게 남기는 '엄숙한 유언'과도 같습니다. 프랑스인들이 '라 마르세예즈'를 부르며 혁명 정신을 되새기듯, 우리도 광복절 노래를 부르며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기억해야 합니다.
"한 나라의 노래는 그 나라의 영혼을 담는다."
매년 8월 15일, 이 노래가 울려 퍼질 때, 그저 의례적인 행사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잠시 눈을 감고, 이 가사를 쓴 위당 정인보 선생의 굳건한 얼굴과, 조국의 해방을 위해 스러져간 수많은 영혼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광복절 노래가 지닌 진정한 무게와 가치를 느끼며, 오늘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다시금 깨닫게 될 것입니다.
